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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파이어> 정보

영어제목: Afire, Roter Himmel, 2023
개봉: 2023.09.13
장르: 드라마
국가: 독일
등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02분
평점: 8.3

수상내역: 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023

줄거리: 집필을 마무리 하기 위해 '펠릭스'와 함께 발트해 인근 별장으로 간 '레온'을 다룬 영화

 

 

영화 <어파이어> 출연진

크리스티안 펫졸트 Christian Petzold(감독), 폴라 비어 Paula Beer, 토마스 슈베르트 Thomas Schubert, 마티아스 브란트Matthias Brandt, 랑스톤 위벨 Langston Uibel, 요나스 다슬러 Jonas Dassler, 엔노 트렙스 Enno Treb

 

영화 <어파이어> 예고편

영화 <어파이어> 리뷰, 후기, 감상평

기대했던 영화였습니다. 올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M&M인터내셔널이 칼을 갈고 준비했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한국에 다섯 번째로 소개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신작, 일주일 내한으로 GV와 이동진 평론가와 유튜브를 찍으시는 등 촘촘한 홍보 일정을 짜두었더라고요. 초반 스코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요. 역사를 메인으로 다룬 전작들과 달리 청춘에 집중한 점도 눈길을 끕니다.​​ 영화는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몽환적인 브금을 들려주며 시작합니다. 펠릭스 아버지의 별장으로 이동하던 중 차가 고장 나 신경이 곤두서있던 소설가 레온, 간신히 그곳에 도착했을 땐 누군가가 그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요.

 

 

펠릭스 어머니 직장 동료 조카 나디야가 지내고 있다는 걸 듣게 되고 메모를 남기지만 밤에 들려오는 성관계 소리나 잘 써지지 않는 글로 예민해진 그 앞에 그녀가 나타나고 주변에 다가오는 산불처럼 별장 분위기가 지펴지고 있음이 전달됩니다. 명성에 비해 <트랜짓> 밖에 보진 못했지만 그 작품에서 느껴지던 기품과 파울라 베어 등 기대를 한껏 하고 갔는데요. 오랜만에 부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밝은 낮에 찍어도 스산한 분위기를 선보이는 감독이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청춘의 분위기를 살립니다. 예민하게 굴지만 나디아에 호감을 가지고 다른 친구들에게 소외받자 표정에서 찜찜한 걸 티 내는 레온과 미소가 완연한 얼굴에도 정공법으로 쏘아붙이는 나디아, 불편하고 대책이 없는 듯 보이지만 사랑을 향해 질주하는 펠릭스나 데비트 사이를 3:1로 구분 짓는 시퀀스가 인상적입니다.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는 공통적으로 마음이 맞지만 다가오는 불은 전혀 생각지 못하는데요. 소설가지만 낭만적인 구석은 하나도 없으며 단지 불이 다가오고 있음만 아는 레온이란 구도가 흥미롭습니다. 결국 화염에 휩싸인 이들이 있으나 그들을 불행하게 바라보는 대신 사랑을 했다는 것과 레온을 대비시켜 거장이 내리는 청춘의 초상을 적극 사용합니다.

 

 

여기에 주인공이 소설가인 경우 자전적인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보는데요.​​ 레온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나디아를 펠릭스 청소 도우미와 동일시하거나 안전 구조원인 데비트를 깔보는 태도를 보이고  예술 학교 지원을 위한 펠릭스의 포트폴리오를 인정하지 않는데요.

 

 

나디아는 사정 상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문학도였고 출판사 사장 헬무트는 펠릭스의 가능성을 목격합니다. 그것에 질투가 나 헬무트가 쓰러져 심각한 진단을 받고 무마하려는 상황마저 오해하는데요.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솔직한 마음을 담아 헬무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소설은 자신이 위대해서가 아닌 주변인들이 부족한 자신을 이끌어주었고 그걸 기록만 한 것임을 백 마디 말보다 와닿는 겸손함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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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은 상상이든 현실이든 어떻게 봐도 기분 좋은 관객들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짠 배려심과 <트랜짓>에선 몽환적인 이미지와 달리 상큼하지만 다 드러내지 않는 모습으로 색다른 얼굴을 선사한 파울라 베어, 일이 안 풀림을 잘 묘사한 토마스 슈베르트 연기, 밤에 조류로 빛나는 바다나 재로 흩날리는 등 미술에서도 공들인 티가 나는 영화였습니다.​​

 

​약간 2021년에 개봉했던 <다 함께, 여름!> 심오한 버전 같기도 한데요.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혜안이 놀라운 러닝타임이었습니다. 레온을 필요 이상으로 답답하게 군 감은 있고 후반부도 좀 더 상상의 여지를 줬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둘 다 좋은 쪽으로만 편차가 있을 뿐이지 혹평까진 갈 수 없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고결한 사람들만이 만나 사랑을 하는 게 아닌, 서로에 대한 강한 이끌림, 오해투성이 안에서도 감정과 창작이 피어날 수 있음을 페촐트 다운 형식으로 써 내려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간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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