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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에'를 부른 가수 박정훈이 향년 58세로 별세했습니다. 절친한 친구인 가수 박준하에 따르면 박정운은 17일 오후 8시께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팬클럽 회장 등이 고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박정운은 1965년 12월 25일 아버지 박성길과 어머니 박이랑 사이에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중고등학생 때 그룹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하다가, 1989년 혼자 귀국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워싱턴 대학교 상업미술과와 한국에서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박정운은 싱어송라이터로 1989년 'who me'로 데뷔했습니다. 프로젝트 그룹 오장박 멤버로 오석준 장필순과 호흡을 맞췄고, 1991년 발표한 2집 '오늘 같은 밤이면', 1993년 3집 '먼 훗날에'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내지르는 창법으로 고음을 소화하며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박정운의 노래는 당시 노래방에서 손에 꼽히는 인기 곡이기도 했습니다. 199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1992년과 1993년 1995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2002년 6년 만에 정규 7집 '땡큐'를 발매하고 더 이상 신곡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17일 오후 8시께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들렸습니다. 팬클럽 회장 등이 고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박정운은 간경화로 투병 중 가수로 재기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수술을 선택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박준하는 "노래와 음반을 다시 하고 싶어 했는데 예전과 같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못하고 있었다."라며 "간이 부어 다른 부위를 누르는 게 목소리가 안 나오는 이유가 될 수 있다."라며 "퇴원 후 다시 공연을 하자고 기분 좋게 입원을 했는데..."라며 착잡해했습니다. 박정운은 3년 전 강경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준하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던 친구라며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박정운은 노래와 음반을 다시 내기 위해 3년 전부터 박준하와 함께 준비를 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목 상태를 만들기 위해 병원 치료도 받았지만 1년여의 노력에도 회복이 안 돼 포기했습니다. 이후 당뇨병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았는데 간경화를 방치해 간이 50% 이상 망가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박정운은 2017년 가상화폐 투자 사기에 연루됐습니다. 그는 2천억 원대 가상화폐 사기를 벌인 미국 업체 한 계열사를 맡아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에 대해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공소장에 적시된 업무상 횡령액 4억 5천만 가운데 뮤지컬 제작 비용 4억 원을 횡령한 혐의는 범죄가 증명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나머지 상법 위반 공정증서 원본 부실 기재 등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박정운은 앞서 가상화폐 채굴기 운영을 대행한 미국 업체 마이닝 맥스의 계열사인 한 홍보 대행사의 대표를 맡아 8차례에 걸쳐 회사 자금 4억 5천여만 원을 빼돌려 쓴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박정운이 가담한 이 가상화폐 국제 사기극은 '미래는 여기에 있다'는 문구를 내걸고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고 가상화폐 이더리움을 채굴하는 컴퓨터 장치를 운영해 주겠다고 홍보했습니다. 다단계 방식으로 더 많은 투자자들을 데려오면 외제 차량 등을 지급해 투자를 부추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투자자들이 쏟아부은 투자금의 대부분을 들고 해외로 도주해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올랐습니다.
가상 화폐 사기극을 벌여 입건된 일당 중에서 가수 박정운은 홍보 업무를 맡은 것입니다. 박정운도 가담한 사기극은 박정운이 출국 금지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가요계에도 충격을 던졌습니다. 가수 박정운은 가상화폐 사기극의 얼굴 역할을 한 혐의로 입건되면서 몰락의 길에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는 2002년 6년 만에 발매한 정규 7집 'thank you'를 끝으로 더 이상 가수 활동을 하지 않다가, 지난 2017년 2월 kbs 2tv 불후의 명곡의 박정운과 김민우 편에서 오랜만에 팬들과 후배 가수를 공개적으로 만났습니다.
가수 박정운은 지난 2002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솔로 앨범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제 음반은 평이할 만큼 차분한 음악들로 채웠다. 조용필 선배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음악 만들 거라 했더니 그럼 산에 들어가서 혼자 하라고 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길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시선을 받다가 어느 날 그 인기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당황하고 시간이 가면서 어느 순간 그걸 초월하고, 우린 다 겪었으니까, 사실 그때가 참된 음악인이 되는 순간인데 불행하게도 이미 대중은 너무 멀리 있다."라며 인기의 덧없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과거 그가 결혼을 발표할 당시 구설에 올랐던 사실도 있습니다. 그는 지난 1993년 어린 시절 미국에서 함께 자랐던 약사 이 모 씨와 결혼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박정운은 1992년 약혼녀로 소개한 이 씨와 2년 전 미국에서 이미 결혼한 사이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구설에 오른 바 있습니다. 1970년 부모와 함께 9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박정운은 시카고에서 줄곧 살아왔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시카고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소꿉친구 이 씨와 오랜 기간 사귀어 오다 성장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당시 이 씨는 미국 시카고에서 약사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박정운은 1989년 국내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사생활을 밝히지 않았고, 1992년 이 씨와의 사이가 소문으로 퍼지면서 약혼녀로 소개됐습니다. 박정운의 유족은 아내와 1남 1녀가 있습니다. 유족은 미국에 거주 중이었으며 아내는 비보를 전해 듣고 18일 밤 입국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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