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요즘에 카페 메뉴판을 보면 홍차라는 메뉴가 없습니다. 대신 얼그레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블랙티 이런 게 쓰여 있습니다. 이런 이름들은 홍차를 뜻하지만 사람들은 홍차인 줄 모르는 거죠. 차는 한자로는 '다(茶)', 영어로는 '티(tea)', 이건 차나무에서 딴 싹, 또는 잎을 우려낸 음료를 말합니다.
녹차, 홍차, 우롱차, 보이차는 모두 다 같은 차 나무의 잎으로 만드는 겁니다. 녹차나무와 홍차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라는 학명을 가진 같은 차 나무입니다. 찻잎을 가공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명태도 마찬가지죠. 생태, 노가리, 동태, 황태, 북어, 먹태, 짝태, 이거 다 같은 명태를 뜻하는 말이죠. 녹찻잎을 만들 때는 녹찻잎을 뜨거운 솥이나 통에 덖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차의 이파리는 공기 중에서 그냥 말리면 녹색이던 이파리의 색이 결국에는 갈색으로 변합니다.
사과를 깎아두면 갈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찻잎에 있던 산화 효소가 작용해서 산화되기 때문입니다. 찻잎이 말라도 녹색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그 산화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도록 효소의 활성을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효소라는 건 단백질 성분이거든요. 단백질은 열을 받으면 변성이 돼서 활성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찻잎을 뜨거운 솥이나 통에서 덖는 겁니다. 산화 효소를 죽이는 것이죠. 이 과정을 '살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홍차잎을 만들 때는 다릅니다. 산화 효소의 활성을 없애는 게 아니라 산화 효소가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따라서 뜨거운 데서 덖는 과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효소가 망가지니까요. 녹차 잎을 만들 때도 비비는 과정이 있기는 한데요, 홍차잎을 만들 때는 더 많이 비빈다고 합니다. 짓이기는 정도입니다. 그 과정에서 살짝 상처가 나고 그래서 이파리의 세포벽이 깨지면 산화 효소가 더 활성화되고, 세포 안에 있던 물질들이 효소와 만나서 더 잘 산화되거든요. 그리고 또 효소가 작동하기 좋은 온도와 습도 환경을 맞춰줍니다. 산화가 더 확실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홍차잎의 색깔이 더 짙게 갈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간혹 홍차는 발효된 차라고 설명하는 글들을 있는데요, 발효라는 것은 보통 세균이나 효모 같은 미생물이 개입해서 그 미생물이 가지고 있던 효소가 작용할 때를 발효라고 합니다. 하지만 찻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미생물이 하는 게 아니라 찻잎 자체에 있는 폴리페놀 산화 효소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발효가 아니라 산화입니다. 그럼 우롱차는 뭘까요? 우렁차도 역시 같은 찻잎으로 만드는데요, 녹차는 산화가 일어나지 않게 좀 막아가면서 녹색을 유지시키고, 홍차는 산화가 확실히 일어나도록 해서 갈색으로 변화시킨 것이죠. 우롱차는 그 중간입니다.
찻잎을 따서 어느 정도 좀 시들시들해지도록 놔둡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정도 산화가 일어납니다. 그 후에 뜨거운 통에서 덖으면서 효소의 활성을 죽여서 만듭니다. 반산화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보이차는 뭘까요? 흑차입니다. 보이차의 보이는 중국의 한 지역 이름인데요, 그 지역의 흑차가 유명해서 보이차가 흑차의 대명사가 된 것이죠. 이건 녹차를 오랫동안 안 묵히다 보니 색이 짙어진 겁니다. 어떤 조건에서 한참 묵히다 보면 효모나 곰팡이가 작용해서 뭔가 발효가 일어나겠죠. 그러다 보니 녹차, 우롱차, 홍차와는 또 다른 풍미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럼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중에 어떤 게 더 좋은 걸까요? 이건 답이 없다고 봅니다. 차는 그저 기호 식품이죠. 사람마다 각자 선호하는 맛과 향이 있는 것이죠. 어떤 기후, 어떤 땅에서 자랐는가, 언제 잎을 땄는가에 따라서 폴리페놀의 함량은 다르고요, 가공 방법에 따라서 폴리페놀이 또 변화합니다,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에서 정리한 차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건강에 대해서 긍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차를 즐겁게 마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럼 카페에 있는 홍차 메뉴를 살펴볼까요? 메뉴판에 홍차라고 써있는 건 찾아보기 힘듭니다. 홍차 말고 '블랙티'라고 써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홍차라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블랙티라고 하는 것이죠. '얼그레이'도 홍차입니다. 홍찻잎에다가 베르가못이라고 하는 과일의 향을 입힌 겁니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라고 써 있는 것도 홍차입니다. 영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마시는 홍차의 맛이 나도록 이런저런 찻잎을 섞어서 만든 블랜딩 홍차입니다.
홍차에는 '싱글 오리진'이 있고, 여러 가지 차를 '블랜딩'한 홍차도 있습니다. 중국 집에 가면 나오는 자스민차, 이것도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입니다. 자스민이 주인공이 아니고요, 녹차 또는 우롱차에다가 자스민 향을 입힌 것이죠. 홍차의 종류 중에 '아쌈', '다즐링', '실론' 이란 게 있는데요, 아쌈과 다즐링은 인도의 지역과 마을 이름이고요, 실론은 스리랑카의 지역 이름이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찻잎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는 모두 같은 차 나무 이파리로 만든 같은 식구입니다. 기호에 맞게 맛있게 드시면 될 것 같네요.
수박, 어떤 게 좋은 건가! (고르는 법, 종류, 암컷, 수컷, 배꼽, 검은 줄, 하얀 가루, 꼭지, 보관법, 먹는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