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영어제목: A Tour Guide, 2023
개봉: 2023.10.18
장르: 드라마
국가: 한국
등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95분
평점: 5.5
수상내역: 24회 전주국제영화제, 2023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출연진
감독: 곽은미
출연진: 이설, 오경화, 박세현, 우정원, 이노아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줄거리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안락한 정착을 꿈꾸는 20대 한영,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 후 이제 정말 돈만 벌면 될 줄 알았는데... 중국 여행객을 상대로 한 가이드 업무는 마음 같지 않고, 심지어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 정미마저 서울살이 청산을 선언합니다. 열심히 살아도 마음 같지 않은 서울살이, 이대로 끝…?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예고편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리뷰, 후기, 감상평
"당신의 인생에도 가이드가 필요한가요?"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포스터 속 문구를 보며 "네. 절실히 필요합니다." 조용히 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 아닐까 싶은데요. 나이를 먹는다고 갈 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은 하던 대로, 가던 길로 가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고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많은 울림을 준 것 같습니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탈북민 박한영의 이야기입니다.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담당 경찰의 관리 속에 살고 있고 두드러지는 말투는 그의 상황을 짐작게 합니다. 한영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부푼 꿈을 안고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이후 취업에 성공하고 제법 실적도 쌓았지만 생각처럼 행복한 일상이 가능한 건 아니었죠. 함께 온 동생 인혁은 어디로 갔는지 소식이 끊겼고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영은 부초처럼 살아왔습니다. 이제 고단함을 접고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정착 가능한 자격도 얻었고 잘해나갈 수 있다는 의지도 충만합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열심히 산 덕분에 조금씩 노하우를 터득하며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파도가 밀려오고 맙니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요인이 삶을 좌우하는 상황, 다시 부초가 되어 떠돌아야 하는 걸까요.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에서 한영의 직업이 가이드라는 부분에 시선이 갑니다. 이방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생활상과 역사까지 꿰뚫고 있어야 안내가 가능한 직업이 관광 가이드입니다. 이는 잠깐의 임기응변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므로 곧 드러나게 되어있죠.
한영은 가이드라는 직업을 원하고 선택했으나 길을 안내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가이드라는 직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한영의 흔들리는 마음에 비추어 섬세하게 그려갑니다.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하지만 올바른 길을 찾기 힘들고 세상의 흐름 역시 한영을 비껴가는 상황은 결국 한영에게 '나는 나 자신을 안내할 수 있는 가이드인가, 믿을만한 사람인가'를 자문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영의 주변 인물을 통해 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동생 인혁은 한마디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중국에서 온 동생 리샤오와 친구 정미 역시 한영을 떠났습니다.
동료 민정은 한영을 대놓고 따돌리지는 않지만 정도에서 벗어날 경우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인간적인 따스함 역시 지니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것은 자신이 지켜줘야 할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관리 담당 경찰 역시 마찬가지죠.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인간적인 모습도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정한 기준에 한할 뿐입니다.
한영은 그들을 보고 겪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한영은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방인보다 더 이방인 같은 모습에 슬퍼하며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지, 살기 위해 큰길이 아닌 사잇길을 탐색해야 할지, 한영은 과연 맺고 끊음을 알고 갈 길을 제대로 판단하며 타인에게 길을 안내해도 좋을 만큼 '스스로에게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마무리>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비단 탈북민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착을 원하는 사람, 그러니까 내적·외적 요인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나를 믿을 수 없어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작품입니다.
곽은미 감독은 "지하철에서 낯선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셀카를 찍는 두 여성을 보았는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들이 우리 일상과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고, 한영이 탈북민이라고 설정하면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며 제작 의도를 밝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영이 만난 많은 이들 중에 한영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믿어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관광객 부모가 맡겨놓고 간 꼬마였습니다. 한영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 아이, 이렇게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열심히 내 길을 개척하고 길을 안내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절제된 연출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이 인물에 집중하게 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길을 찾는 이들, 정착을 원하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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