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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

이강환, 칠성파 두목, 사망, 나이, 키, 어떻게 깡패가 되었나! 충격! (사망, 이유, 엄마, 아들, 조양은, 디시, 싸움실력, 소아마비, 야쿠자, 밀수, 성범죄, 영화 친구)

by Blue Bloods 2023. 7. 20.

 

이강환

<프로필>

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이자 칠성파의 두목이었던 이강환은 바로 7월 19일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 간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르며 칠성파를 부산 최대의 조직으로 키워냈던 이강환, 이 과정 중 라이벌 조직인 '20세기파'와 자주 충돌하며 1993년에 부산에서 집단난투 살인사건을 일으켰는데 훗날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친구'가 제작되었다. 참고로 '20세기파'의 유명인물로는 부산의 수치이자 상남자인 '대하이햄'이 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

이강환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알았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난 이강환,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팔에 문제가 생겼는데  체구도 또래에 마르고 작았던 지라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어머니가 그에게 화를 내며 남들을 팼으면 팼지 맞고 다니지는 말라고 해 이를 계기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었던 이강환, 이후로 배포가 커져 친구들을 패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가 사고를 칠 때마다 어머니가 열심히 번 돈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은 칠성파의 2대 목으로 군림했다. 동네 최약체에서 양아치로 거듭나 결국엔 조직생활까지 시작하게 되었던 이강환, 열심히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던 중 칠성파의 초대 두목이자 처가 친척이었던 '이경섭'으로부터 칠성파를 물려받았는데 깡패 두목이 천직이었던 걸까, 출소한 조직원들과 전과자들을 모아 박정희에 의해 박살 난 칠성파를 순식간에 부활시키더니 이후 밀수와 빠찡코, 유흥업소 사업까지 벌이며 10년 만에 칠성파를 부산 최대 규모의 폭력조직으로 키워냈다.

 

 

이강환
이강환

<칠성파 와해>

칠성파는 한 차례 와해된 적이 있다. 한참 부산에서 세를 불려 가던 중 삼청교육대회 창설로 수많은 조직원들을 잃었던 칠성파, 이때 이강환 또한 마약왕의 실존 인물인 '이황순'과 손을 잡았다가 필x폰 제조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감방으로 끌려갔었다.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러 사회로 돌아왔지만 조직이 산산조각이 난 상태라 다시 한번 조직을 부흥시키고자 했던 그, 그 길로 부산 및 경남지역에 거주하던 깡패들을 끌어모아 깡패 연합인 '화랑 신우회'를 결성했는데 발족 당시 조직원 수가 300명에 달했던지라 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일본 야쿠자>

이강환은 야쿠자와 의형제를 맺은 적이 있다. 조직을 안정화시킨 뒤 한국 진출을 넘보던 야쿠자와 손을 잡았던 이강환, 야쿠자와 의형제를 맺기 위해 조직의 간부들을 데리고 오사카를 찾아왔는데 당시 이강환이 씨름협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어 오사카 씨름대에 참가 중이던 강호동이 감독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결혼식에 끌려가야만 했고 훗날 이 사건을 계기로 조폭 루머까지 터졌기 때문에 이에 강호동이 "일생을 사는 동안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 감독과 코치를 따라가 밥을 먹은
자리였을 뿐이고 고3이 뭘 알았겠느냐?"라고 해명했었다.

 

 

<머니>

칠성파는 돈 때문에 분열된 적이 있다. 야쿠자와 의형제를 맺은 뒤 축하금으로 1억 엔을 받았던 이강환, 그런데 이 돈을 두고 간부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났기 때문에 얼마 안 가 두 명의 간부가 칠성파를 탈퇴하고는 '영도파'와 '신칠성파'를 결성했었다. 그러자 조직을 배신한 두 사람에게 분노해 총 10차례에 걸쳐 폭력을 사주하며 배신자를 응징하려 했던 이강환, 하지만 이 과정 중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며 검거를 당했기 때문에 복수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징역 8년을 선고받아 감방에 끌려갔었다.

 

 

<또다시 감방>

이강환은 출소하자마자 다시 체포를 당했다. 출소 이후 나이트클럽에 눈독을 들이며 클럽 사업을 준비하던 박모 씨를 호텔로 불러냈던 이강환, 당시 그를 위협해 5억 원어치의 클럽 지분과 보호비 명목으로 2억을 뜯어냈다가 협박 및 탈세 혐의로 징역 2년에 벌금 4억을 선고받았는데 감옥에 들어간 그가 4억의 벌금을 내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후 불법 오락실까지 운영하다가 걸렸기 때문에 2년이었던 수감 기간이 3년 5개월로 늘어났었다.

 

 

이강환과 영화 친구
이강환

<협박>

이강환은 건설사 대표를 협박한 적이 있다. 2010년 건설사 대표에게 약 4억을 갈취하며 "내 이름을 거론하면 죽인다."라고 협박했던 이강환, 이후 대표의 신고로 경찰이 그를 체포하긴 했지만 폭행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도중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에 이에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참고로 당시 그는 과거 자신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전직 검사를 양파를 변호사로 선임했었다.

 

 

<아들>

이강환의 아들 또한 사고를 신 적이 있다. 부산에서 고철 유통 및 인테리어 사업을 벌이며 사람들로부터 억대 투자금을 받았던 그의 아들, 하지만 예정했던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아 분노한 피해자들에 의해 고소를 당했는데 이때 그가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깡패들을 데리고 피해자를 찾아 "아버지가 칠성파 두목이다."라는 협박을 가하며 강제로 고소를 취하시켰기 때문에 이에 경찰이 곧장 그를 협박혐의로 입건했었다.

 

 

<성범죄>

이강환은 성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나이가 들고부터 뇌경색과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던 이강환, 그러던 중 노망이 난 것일까?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마라. 어디에 있든 잡아 올 수 있다."라는 말을 하며 간병인의 신체를 강제로 만졌는데, 이후 구강 x교까지 요구해 두 번의 성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두 건 모두 피해자와 합의를 했기 때문에 별다른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참고로 이때 간병인들은 여자가 아닌 칠성파에 속해 있던 남자 조직원들이었다.

 

 

<사망>

이강환은 바로 7월 19일 사망했다. 지난해 팔순 잔치를 치르고부터 휠체어 없이는 못 움직일 정도로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던 이강환, 결국 수개월 간 입원 치료를 받던 중 7월 19일 새벽에 숨을 거뒀는데, 현재 수많은 전·현직 깡패들이 그의 장례식장에 방문하고 있는 상황이라 집단 난투극을 우려한 경찰에서 장례식장 주변에 경찰에 배치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강환은 충성 경쟁을 이용해 후계자를 3번 정도 바꿔왔는데 2011년에 한모 씨를 후계자로 지명한 뒤론 별다른 이변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사망한 현재 한모 씨가 두목 자리에 오를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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