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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굉장히 독특한 감독 중 한 명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지만 자신만의 톤이 명확한 감독이라고 할까요. '아이엠 러브'에서는 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한 화면으로 표현했고, '비거 스플래시'에서는 욕망이라는 거친 감정을 스타일리시한 편집으로 담아냈습니다.
영화 <본즈앤올> 정보
개봉: 2022.11.30
장르: 공포/로맨스/멜로
국가: 미국, 이탈리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30분
평점: 8.7
수상내역: 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2022
영화 <본즈앤올> 느낌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어땠나요. 아름다운 첫사랑의 달콤 쌉싸름함을 생생한 풍경과 음악으로 여운을 줬고,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인 '서스페리아'에선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서늘한 공포를 선사했습니다. 매번 장르를 바꾸는 것도 신기한데 멜로를 찍든 호러를 찍든 "'구아다니노'가 '구아다니노' 했구나."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멜로, 호러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는 장독 루카 구아다니노, 이번엔 전작들의 필모를 바탕으로 공포와 멜로를 섞은 성장 영화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호흡을 맞췄던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과연 이번 영화는 어땠는지, 입소문으로만 듣던 높은 폭력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화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찾아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번 <본즈 앤 올>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카니발리즘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성장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가 붙어 있는 소설이죠. 여기서 잠시 카니발리즘이라는 말이 생소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번역하자면 동족 포식, 쉽게 말해 인간을 기준으로는 식인 행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거부감이 오는 분들도 계실 것 같네요. <본즈앤올>은 식인을 할 수밖에 없는 소녀 '매런'이 자신과 똑같은 소년 '리'를 만나 본인의 과거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일종의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와 소설은 주인공의 설정과 어느 정도의 흐름만 같을 뿐 꽤나 많은 부분이 다른데요. 영화는 소녀의 시점으로 지극히 평범하게 시작하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강렬한 장면을 통해 큰 충격을 선사합니다.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 또 티모시와 구아다니노의 조합만 생각하고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시작부터 굉장히 당황하실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장면을 통해 어느 정도 이 영화의 수위와 분위기가 파악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충격이 지나가면 본격적인 주인공의 과거 찾기 여행이 시작됩니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왜 피와 살점을 욕망하는 것일까? 나의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그러한 질문에 해답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 되겠습니다.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소년 '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역시 그녀와 같은 식인 식성을 가졌기에, 또 서로에게 가지는 이성적인 끌림이 있었기에 여행에 동참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서정적이고 감성적입니다. 두 남녀가 만나 서로의 과거를 찾아 정처 없이 떠나는 이야기, 실제로 그런 부분이 훨씬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세상은 둘을 내버려 두지 않겠죠.
두 인물에겐 식인이라는 절대 관용될 수 없는 본능이 있었으니까요. 둘의 사랑과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혐오·자책·존재성의 부정·다양한 감정들이 서로를 갉아먹고,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본인들보다 훨씬 소름 끼치고 추악한 식인종들 역시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요. 이쯤에서 영화의 폭력 수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개봉 전부터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다.", "너무 끔찍하다."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어쩌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내용일 것 같기도 한데, 사실 관련된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강렬하긴 했다." 정도입니다. 확실히 수위가 높긴 합니다. 머리가 잘리고 팔이 뜯기는 장르적 쾌감의 장면이 아니라 사람의 살점을 입으로 뜯어먹는 다소 좀비에 가까운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만한 장면에 있어서도 의도적으로 자세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마치 "이런 인간들인데도 동조할 수 있어? 이해할 수 있어?"라고 하는 듯합니다. 그 의도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연결됩니다. <본즈 앤 올>이라는 영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이렇게나 끔찍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들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폭력과 공포를 묘사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과 이해라는 것이었죠.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힘겹지만, 또 이상하게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의 어깨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석양, 먼지 속에서 쓸쓸하게 풍겨지는 건조한 풀 냄새, 주인공들의 상처를, 그리고 위로를, 마침내 이어지는 엔딩의 여운까지 영화는 보이지 않는 따뜻함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포옹하는 듯합니다. 어떤 분은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감정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끔찍한 식인종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세상 하나뿐인 사랑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식인이라는 개념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끔찍하게 여겨졌던 장면도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성장이라는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로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더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영화 <본즈앤올> 예고편
그 개념은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사춘기, 술이나 약물 정도로 생각해 본다면 영화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본즈앤올>은 은유와 메시지가 많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보기에 좀 힘겨우시더라도 한 번쯤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아주 잔혹하지만 따뜻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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