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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

이건희, 삼성 이건희 회장의 기업 혁신 이야기!

by Blue Bloods 2020. 9. 29.

 

이건희, 삼성 이건희 회장의 기업 혁신 이야기!

 

 

이건희에 대한 소개입니다.
이건희는 현재 삼성 회장이고 삼성 그룹 총수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의 셋째 아들로 첫째와 둘째 형을 제치고 회장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건강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인생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1942년 1월 9일 일제 강점기 당시에 태어납니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때도 형과 함께 자취생활을 해서
이 시기에 이건희 형제가 부모와 모두 모인 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병철이 워낙 바쁘던 시기였으니까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어릴 때는 상당히 말수가 적고,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놀고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한국으로 와 부산 사범부부속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이때 4학년과 5학년을 같이 다닌 권근술 전 한겨레 사장의 증언으로는 부잣집 도련님이라 장난감을 많이 가져와 놀았는데 말이 없고 장난도 잘 안 치던 아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서울사대부고를 진학했는데 동창이던 홍사덕 전 의원이 인터뷰한 것에 따르면 미국에서 차관을 많이 들여와야 이해관계 때문에 안보가 튼튼해진다,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등 고등학생이 생각하기 힘든 말들을 많이 했다고 나옵니다.
고등학교 때도 딱히 말이 없고 느릿느릿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면 자신은 사람 공부를 한다고 대답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병철이 임원 중 한 명을 좇아내던 일이 있었는데, 고등학생인 건희가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자 이병철이 두말 않고 그 임원의 다시 불러들인 일화가 있으니, 이 걸 보면 어릴 때부터 사람 보는 눈을 이병철에게 인정받고 있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공부에는 별 뜻이 없었던 건지 성적은 중간도 안 되었습니다. 
이후 연세대 상학과, 현재의 경영학과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자퇴하고, 와세다 대학 상학부에 진학해 졸업을 합니다.  

와세다 대학 시절 전자제품을 사다가 뜯어보는 취미를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자원이 없는 한국이 선진국 틈에 끼어 경쟁하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 산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뜻깊은 유학 생활을 보냈으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통해 선진국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군 복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강용석은 이건희가 정신질환으로 면제받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근거는 제대로 된 사실이 아니었고 한겨레신문의 취재에서는 만기 전역은 아니지만 복무를 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한편 삼성그룹 측에선 이건희 회장은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이라고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 동양방송 이사, 78년 삼성물산 주식회사 부회장, 
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됩니다. 
이병철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장남도 아닌데 삼성을 물려받은 것이 전통적인 재벌 구조에서는 좀 의아할 수 있습니다.  이는 1969년 이맹희와 이창희가 아버지를 청와대에 고발하는 사건, 일명 '왕자의 난'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맹희와 이창희가 진압당해 내쳐졌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본인이 나름 능력을 보여준 적도 있습니다. 
이건희는 어렸을 때만 해도 형이 두 명이나 있어서 삼성 회장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지만, 이맹희의 무능과 이창희의  반란 등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이건희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이건희는 이병철이 마음에 들 정도의 업무 성과를 내면서 후계자로 거듭납니다.
특히 동양 방송을 전두환에게 뺏기기 전까지는 드라마 부문을 직접 챙겨서 키웠을 정도로 의욕적이었고 성과도 좋았습니다. 
삼성그룹 내부 경영진과 이병철 회장의 반대에도 개인 판단으로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고 지속적인 설득으로 삼성그룹  차원의 투자를 이끌어 냈는데 이것이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가 됩니다.

 

 


삼성그룹 창립 50주년이 되는 1988년에 삼성이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인간 중심, 기술 중시, 자율 경영, 사회 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고 이건희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라고 지적합니다.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엘에이에서 전자 부문 수출상품 현지 비교평가 회의를 주재합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였고, 삼성 제품은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며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곳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이건희 회장은 이런 수준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3류, 4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바랍니다.

 

그것은 양이냐 질이냐의 선택이었고, 국내 제일에 머물 것인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초일류로 도약할 것인가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1993년 6월 7일 이건희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제 합니다.

 

 

 

여기서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합니다.
신경영이란 이제까지 지속되었던 양 위주 경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질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 구조를 실현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에 양위주 경영에서 생기는 불량을 뿌리 뽑기 위해 1995년 애니콜의 휴대폰이 다수 품질이 낮은 것을 확인하고 구미공장 앞마당에서 15만 대, 당시 돈 500억 상당의 휴대폰을 전부 불태워 버립니다.
이러한 신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나갔고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고는 다 바꿔봐." 

이건희 회장은 그룹 회의에서 심심하면 위기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매출이 100조를 넘어도 시장 흐름이 바뀔지 모르니 걱정, 매출이 줄면 줄었다고 걱정, 이렇게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게 여러 ceo 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삼성 성장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라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이건희는 경영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인간미'라고 합니다.

"삼성인의 자세로 뛸 사람은 뛰고 앉아 있을 사람은 앉아 있어라. 그러나 뛰는 사람은 앉아있는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잘 쉬었다가 너도 잘 뛰어라고 격려해 줘! 앉아 있는 사람은 뛰는 사람을 질투하지 말고 박수를 치면서 나도 빨리 체력을 회복해서 다시 뛰어야지라고 생각하라."

 


이건희 회장의 인생은 생각보다 밝혀진 게 많이 없습니다.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려놓은 이건희 회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건희   

출생 : 1942년 1월 9일
소속 : 삼성전자(회장)
가족 : 배우자 홍라희, 아들 이재용, 딸 이부진, 딸 이서현,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을, 누나 이인희, 형 이맹희, 형 이창희, 누나 이숙희, 동생 이명희
학력 :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 수료
수상 :  2006년 밴플리트 상, 2004년 홍콩 디자인센터 홍콩 산업기술통상부 디자인경영자상 
경력 : 2012.06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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