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린 장현의 모습을 보여준 <연인> 19화, 여러분은 어떻게 시청하셨나요. 19화 예고편을 통해 살짝 나왔던 장현의 시국에 맞지 않는 천진한 표정과 손수 밥까지 떠먹여 주며 어린아이 대하듯 장현을 대하는 길채의 모습 때문에 많은 분들이 머리를 맞은 장현이 기억 상실증에 걸린 거 아니냐는 추측을 했었죠.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의 사극 속에서 뻔하디 뻔한 기억상실증이 나오겠어?"라고 생각했다가 장현이 "누구시오?" 그러는데 좀 뜨악했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세자가 죽고 이후 강빈마저 모함을 당해 사약을 받고 죽는 이야기가 한 회차에 몰아서 나오는 걸 보고 만약 장현이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고 제정신으로 깨어났다면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성정을 생각했을 때 이 혼란 속에서 세자가 됐든 강빈이 됐든 이 안타까운 목숨들을 구하러 사지에 또다시 뛰어들었겠구나 싶더라고요.
이 두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장현이 극 중에서 거래에 능하고 기지가 뛰어나며 무예까지 출중한 장현이 위험에 처한 세자와 강빈을 당연히 도우려고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역사적 고증으로도 세자와 강빈은 죽을 수밖에 없었고 이때 장현이 나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공백을 머리 부상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으로 채운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러는 사이에 잠시라도 장현과 길채의 행복한 한 때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마음도 달래고, 또 한편으로는 종영을 단 2회 차 남겨두고 있는 만큼 긴장감이 고조될 결말로 가기 전에 주인공들의 지극하고 애절한 사랑의 서사를 더욱 쌓아가는 것이기도 할 거고요.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소현세자가 죽고 이듬해 강빈이 사약을 받아 죽어서 두 사람의 죽음에 긴 시간의 간격이 있는데 설마 그 수개월 동안 당연히 기억 상실이 있던 건 아닌 거 같고, 그저 드라마적 허용으로 시간을 압축해 버린 거겠죠. 어쨌든 개인적으로 소현세자가 죽을 때 그리고 강빈이 죽어가며 세자를 만나는 장면도 너무 안 됐고 슬프더라고요.
청에 볼모로 잡혀가서 그 오랜 세월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을 하며 단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텐데 돌아와서 겨우 저런 대접을 받고 차례대로 비참하게 죽게 되니까 원래도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렇게 다시금 드라마로 보게 되니까 더욱 슬프게 와닿더라고요. 인조 진짜 정말 별로예요.
그리고 장현이 기억 상실증에 걸리며 그의 과거의 트라우마도 모두 알게 되었는데요. 노비를 마음에 품어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했던 누이의 비극으로 인해 그는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신분의 차, 절의 강조 등에 대한 혐오심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와의 절연까지 감행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누이가 사랑했던 노비에게 휘파람을 잘 분다며 량음이라는 애칭을 지어줬는데 이 때문에 량음이 누이와 그 노비 사이의 아이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죠. 물론 나이차이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은 거 같아요. 또 굳이 량음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렇고 유독 량음이 꼭 행복한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하며 그에게 애정을 갖는 것도 위험에 처한 그를 구하고 평생을 지키며 마치 친형제처럼 곁에 두는 것도 누이가 남긴 유일한 혈육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만약 량음이 진짜 장현의 누이의 아이라면 장현이 삼촌인 건데 아무리 량음이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삼촌에게 저런 연정을 품어 버리는 설정은 좀 너무 간 거잖아요. 그래서 량음의 노랫소리가 과거 노비가 불러줬던 휘파람 소리를 떠올리게 했고 또 그의 여린 외모와 심성이 잃어버린 누이를 떠올리게 했기에 그 두 사람을 량음에 투영하며 량음이 꼭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싶어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어리고 힘없던 당시의 자신은 이 두 사람을 지키지 못했지만 지금 곁에 있는 량음만은 꼭 지켜내고 싶은 장현의 결심의 산물이기도 할 거고요. 그래서 더더욱 이런 장현이 감옥에 갇혀 있는 량음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 의아하더라고요. 지난 영상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는 15년이나 갇혀 있는데 이렇게 살뜰히 챙기는 량음을 두고 장현이 길채와 숨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드라마 속에서 너무 고생만 한 주인공 장현과 길채의 해피 엔딩을 바라고 있긴 하지만 결국 그가 량음을 구하지 못한 건 그가 살아 있지 않다는 방증일까 봐 결말이 다가오는 게 좀 두렵기도 합니다. 이 애잔한 분위기를 이어서 슬픈 결말까지 갈지, 늦게라도 짠하고 나타나 량음까지 구하고 정말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이 될지 마지막까지 본방사수로 확인해 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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