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대한민국의 수의학자인 황우석은 1953년생으로 만 70세이다. 배아줄기세포로 유명세를 치렀기 때문일까 그를 생물학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수의학을 전공한 이로 현재 하고 있는 일 또한 인간 관련 연구가 아니라 동물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소 때문에>
황우석은 소 때문에 수의학을 전공했다. 1953년 충남의 부여에서 태어났던 황우석, 어렸을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홀로 그를 키우며 낮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송아지를 받는 조건으로 부잣집 소를 3년간 돌보게 되었는데 소 한 마리로 온 가족이 먹고살 수 있던 시절이라 어머니가 소를 마치 자식처럼 돌봤기 때문에 당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보며 황우석이 "어머니를 돕고 싶다. 소에 대한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장래희망을 수의학자로 정했다고 한다.
<성적>
황우석은 학창 시절 전교에서 400 등을 한 적이 있다.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공부한 결과 장학금을 받으며 중학교를 졸업했던 황우석, 이후 고향을 떠나 충청권의 명문고인 대전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충청도의 인재란 인재는 다 모 여 있던 학교라 학기 초반 전교 400 등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낙담을 하기보다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겠다는 각오로 밤새도록 공부에 매진했기 때문에 2학년 때 전교 200등을, 이듬해에 전교 상위 10%로 거듭나 서울대 수의학과로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물복제>
황우석은 동물 복제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이따금 매스컴에 출연했던 황우석, 그러던 중 복제양 '돌리'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동물 복제 열풍이 불기 시작해 이에 홍우석이 젖소를 복제했는데 동물 복제에 성공한 이가 극히 적던 시절이라 그가 해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많은 한국인들이 그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이후 2005년엔 세계 최초로 개까지 복제하는 데 성공해 동물복제 권위자로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줄기세포>
황우석은 한때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한 이로 알려졌었다. 젖소복제로부터 5년이 지났던 2004년,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며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보냈던 황우석,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한 거라 전 세계의 유명 기업들이 앞다퉈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당시 황우석이 "외국의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국내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겠다."라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이에 한국인들이 감동을 받아 그를 애국자로 추앙했었다.
<국빈>
당시 황우석은 국빈급 대우를 받았었다. 위인전과 교과서에까지 실렸을 정도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국가적 영웅이 되었던 황우석, 이런 그를 위해 대한항공에서 10년 동안 일등석 지원을 약속했는데 심지어 경찰청에서도 그를 '3부 요인급 경호 대상'으로 승격시켜 그의 집 앞에 경비초소를 세운 뒤 24시간 동안 경계근무를 실시했었다.
<정계 진출>
황우석은 정계진출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이에 정치인들까지 그에게 눈독을 들이며 "영수증이 없더라도 연구비를 지원해 줘야 한다."라는 말을 국회에서 꺼냈는데 2004년엔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에서 동시에 그에게 후보직을 제안했지만 이때 황우석이 "내가 남을 곳은 실험실이고 내 벗은 현미경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정치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강원래>
황우석은 한때 불치병 및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이었다. 그의 연구 성과를 지켜보며 언젠가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던 환자들, 한 번은 황우석이 열린 음악회에 출연해 클론의 강원래에게 "지금 추고 있는 휠체어 댄스가 추억의 댄스가 되기를 희망한다. 조만간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댄스 솜씨를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응원을 전했는데 당시 이에 감동을 받았던 장애인들이 그의 연구소에 체세포를 제공했다고 한다.
<윤리>
황석은 윤리 문제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2004년 과학학술지인 '네이처'에서 황석이 연구에 사용했던 난자의 출처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를 비판했는데 이어 그의 뒤를 캤던 'pd수첩'에 의해 그가 난자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제공자에게 금품을 전달했던 것과 여자 연구원들의 난자를 채집했던 것이 밝혀져 과학 윤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로부터 진상 규명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은 황우석이 아닌 pd수첩을 비판했었다. 난자문제와 관련해 계속해서 말이 나오자 결국 모든 의혹을 인정하며 맡고 있던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혔던 황우석, 그러자 이에 분노했던 그의 지지자들이 "PD수첩 때문에 국가적 인재가 사라졌다. 사소한 문제 하나로 연구를 망치려 하냐?"라는 말을 하며 MBC 앞에서 pd수첩 폐지를 위한 촛불시위를 보이더니 이후 pd수첩을 옹호했던 진중권을 찾아 그에게 습격까지 가했었다.
<조작>
황우석은 거짓으로 논문을 작성했었다. pd수첩이 욕을 먹고 있던 2005년 12월, 포항공대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황우석이 논문을 조작한 거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한 네티즌, 당시 그가 주장하길 황우석이 포토샵으로 세포의 비율을 바꿔 있지도 않은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는데 이후 네티즌들이 그의 논문을 분석해 보니 진짜로 여러 군데에서 조작이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고 그로부터 얼마인가 난자를 제공했던 병원 측에서도 "황교수 병문안을 갔다가 알지 못했던 얘기를 들었다. 배아줄기세포가 전혀 없다고 한다."라는 폭로를 터뜨려 황우석의 조작이 사실로 밝혀지게 되었다.
<파면>
사건의 여파로 황우석은 교수직에서 파면을 당했다. 논문과 관련해 비판을 받기 시작하자 황우석에 대한 자체적인 조사를 시작했던 서울대, 조사결과 '연구실에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전혀 없다. 2004년에 발표한 세포 또한 환자 DNA와 다르다."라는 결론이 나와 서울대에서 그의 교수직을 박탈했는데, 동시에 진행된 재판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생명윤리법 위반과 횡령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근황>
황우석은 현재 중동에서 일하고 있다. 구라로 논문을 작성했던 게 밝혀지며 민심이 개박살 나 국내 활동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던 황우석, 하지만 복제기술만큼은 리얼 진또배기였기 때문에 2022년에 아랍에미리트로 넘어가 왕실의 사랑을 받던 '마부르칸'이라는 낙타를 복제하는 데 성공해 만수르의 밑에서 국빈급 대접을 받으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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