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비오는 장면을 찍는 이유! (봉준호 나이, 키, 부인, 아들, 아카데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습니다.
오늘은 영화감독 봉준호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봉준호의 작품은 디테일이 섬세한 것으로 유명하죠. 살인의 추억 현장에서 연출팀과 미술팀이 봉테일이란 별명을 처음 불렀다고 합니다. 살인의 추억 촬영 당시 여중생에게 반창고를 붙일 때 너무 점착도가 높으면 안 된다, 옛날에는 그렇게 잘 붙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창고를 여러 번 손으로 만져 적당한 점착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스타킹에 들어가는 돌들의 크기와 형태까지 계산하는 걸 보고 혹시 이런 일을 실제로 벌여본 적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극 중 박두만이 들고 다니는 형사 수첩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캐릭터와 시대적 배경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농협 마크가 달린 수첩을 일부러 찾았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배우랑 감독이 역전되는 시기가 온다. 처음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감독이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지만 촬영 후반 어느 시점이 되면 배우가 인물에 완전히 이입된 순간 역전되는 시점이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살인의추억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대사가 배우랑 감독이 역전된 시점에 나온 송강호의 애드립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촬영 3일 전에, 대사가 생략되어 있으니 송강호에게 대사를 부탁한 것입니다.
영화 괴물의 배경이 된 한강 공원은 전국에서 가장 큰 자전거 대여소가 있습니다. 공간감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매번 촬영할 때마다 400대의 자전거를 스태프들이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괴물 제작비는 110억 원으로 당시 예산으로는 불가능했던 괴물 cg작업을 봉준호 감독은 독학으로 터득한 후 최소한의 금액으로 의뢰합니다. 괴물 cg 감독은 "괴물이 등장한 게 125개 장면뿐이라는 걸 기억한다. 이게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텔링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김혜자의 춤으로 시작해 춤으로 끝난 마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은 역대급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해 질 무렵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역광으로 촬영한 엔딩 장면입니다. 봉준호는 이 역광 촬영 장면을 위해 태양이 낮은 고도로 오랫동안 깔려 있는 날짜를 계산했고 디데이를 받아내 과학적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마더에서 김혜자는 한 장면을 위해 30번 넘게 촬영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지친 김혜자 선배를 위로하면서 16번과 30번 테이크 중에 선택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곽도원은 영화 마더의 단역 숯불맨으로 출연했었습니다. 오디션 합격 후 시나리오를 받아 본 곽도원은 본인 분량이 있는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는 걸 보고 봉준호 감독의 섬세함에 감동했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 작품의 콘티를 직접 그리기로 유명합니다. 설국열차의 기차 설계도 또한 봉준호 감독 본인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총 60칸으로 구성된 도면에는 칸 별 크기와 이름이 적혀있고 총격전 장면에서의 총탄이 오고 갈 거리까지 계산돼 있습니다. 설국열차 커티스 역을 맡았던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 감독의 촬영 방식이 정말 독보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보통 한 장면을 찍을 때 와이드 숏으로 전체 장면을 찍고 그다음 인물을 기준으로 처음부터 다시 찍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봉감독의봉 감독의 머릿속에는 장면이 다 완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첫 대사로 당신을 찍는다면 두 번째 대사는 저를 찍고 세 번째 대사는 저쪽에서 찍는다, 집을 지을 테니 못 한 자루를 달라고 하지 않고 못 53개가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봉 감독의 비전을 전적으로 믿었고 완전히 복종했다. 급이 다른 천재이다."라고 봉준호 감독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국열차 촬영 전 외국 배우들과 함께 고사를 지냈고 교수형 된 동물이 상 위에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 태블릿 PC에 돼지 얼굴을 띄워 놓는 걸로 대체했습니다. 옥자 영화 옥자 속 한 장면은 실제 백악관 사진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실제 사진 속과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들을 데려올 것을 캐스팅 디렉터에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봉 감독은 영화 기생충에서 조여정이 펜을 잡는 손동작 하나까지 신경 썼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는 손 모양을 할 것을 직접 시범으로 보여주었고 극중 연교는 지나치게 순수한 부잣집 사모님 역할이기에 그에 걸맞은 손동작을 주문한 것입니다. 아역 배우 한 명을 위해 블루스크린을 설치해 촬영한 장면이 있습니다. 촬영 당시 기록적인 폭염으로 아역 배우가 밖에서 노는 장면을 찍기엔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더위가 가신 뒤에 장면을 찍었고 나중에 장면을 합성했다고 합니다. 특수 효과 비용이 더 들었지만 아역 배우 보호를 위해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기우가 박사장 집에 고액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장면은 실제 경험담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동선이 겹칠 일 없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과외다, 철문을 삐거덕 열면 정원이 나오는 고급 복층 빌라였다, 2층에 사우나도 있고 신기했다, 처음 사모님 면담 때 느낌이나 대리석 바닥의 감촉, 넓고 싸한 적막감이 참고가 됐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기생충에서 소품으로 사용된 쓰레기통 가격이 250만 원이라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페달을 내려도 뚜껑에서 소리가 안 나는 고급 제품이며 쓰레기통에 흠집이 날까 봐 반납할 때까지 덜덜 떨었다고 하는 에피소드도 전해졌는데요,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소품 담당자가 직접 인터뷰한 기사에서 기생충에 나오는 쓰레기통은 일반 마트에서 2만 5천 원 정도 하는 평범한 쓰레기통이었다고 합니다.
송강호는 "봉준호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돼 있다.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시공간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진다.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보니 필요 이상의 안 좋은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선균 역시 "봉준호의 아름다운 패키지 여행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장혜진은 "감독님이 주문하신 대로 나오는 자판기 연기를 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왠지 쪼잔한 인간처럼 느껴지고 엉뚱함과 과감성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관객들이 봉테일의 정교함이나 해석에만 주목하게 되고 본인도 그 점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논두렁에서 미끄러지고 괴물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화염병을 떨어뜨립니다. 유독 봉준호 영화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는 장면이 많은데 프랑스 영화잡지 기자들이 이것에 대해 묻자 봉준호는 농담 삼아 '삑사리'라표현했습니다. 기자들은 '삑사리'를 그의 예술적 화두로 보고 'art of piksari'로 기사 제목을 뽑았습니다.
비 내리는 장면이 한 번 이상 등장하고 중요한 극적 전환점으로 사용됩니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도 비오는 장면에 집착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잘생기기만 한 배우에겐 별 매력을 느끼진 못하며 배우를 고를 때는 과거 작품이나 무대만을 본다고 합니다. 외모는 남녀 공통으로 길거리에 흔히 있을법한 얼굴을 캐스팅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뉴욕타임스는 봉준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봉준호의 세계에 살고 있다. 봉준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를 볼 수 있고 역사도 돌이켜 볼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을 결합해 영화의 예술적 쾌감과 오락적 쾌감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그의 작품들은 늘 기대와 호기심을 안겨 준다. 가장 흥미진진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실력있는 감독이 탄생되어 너무 기쁩니다. 봉준호 영화는 뭔가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이 잘 조화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정말 대단한 쾌거이고,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앞으로 봉준호 감독이 또 어떤 영화를 만들어 낼지 크게 기대해 봅니다!
봉준호
나이 : 1969년 9월 14일 (51세)
고향 :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봉덕동 (現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본관 : 하음 봉 씨
학력 : 대구남도초등학교 (전학), 잠실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학 / 학사), 한국영화아카데미
신체 : 183cm
혈액형 : AB형
가족 : 외할아버지 박태원, 아버지 봉상균, 어머니 박소영, 형 봉준수, 누나 봉지희
배우자 : 아내 정선영 (1966년생) (1995년 결혼), 단편 <지리멸렬>에 편집 스태프로 참여
자녀 : 아들 봉효민 (1994년생), 아들도 영화감독, 봉준호 감독의 후광을 거부하는 의미로 감독명에 효민이라고 올림.
종교 : 가톨릭 (세례명 : 미카엘)
데뷔 : 1993년 영화 '백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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