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김희선, 출생 1977년 6월 11일, 키는 168cm, 몸무게 45kg입니다. 1990년대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자 미녀 배우의 대명사 중 하나죠.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있던 여배우를 뽑으라고 하면 전반기에는 최진실, 후반기에는 김희선을 꼽을 만큼 인기를 누린 여배우입니다.
또한 한 시대를 대표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마지막 여배우라고도 볼 수 있죠. 김희선 시대 이후 김희선만큼의 인기를 누린 여배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시 연예계에서의 위상은 신처럼 떠받들어질 정도였다고 하네요. 역대 최연소 연기 대상이라는 수상 실적을 비롯해 20대 초반의 나이에 대중적 호감도, 광고 선호도, 한류까지 최초로 모든 영역에서 정점에 오른 배우입니다. 1992년 혜성 여자 고등학교 재학 당시 '고은 얼굴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김희선은 타고난 얼굴 덕에 처음부터 탄탄대로였습니다. 연기 학원에 등록하러 갔더니 연기 배우기 전에 대회부터 나가보라는 추천을 받았고 결과는 대상이었습니다. 이후 학생 잡지 '주니어'의 표지 모델로 얼굴을 비추자 곧바로 cf 업계의 섭외 요청이 이어졌고 각종 광고 모델로 출연하며 화려하게 데뷔하게 됩니다. 김희선은 압도적인 미모에 자신만의 통통 튀는 신세대 이미지와 매력을 더해 김희선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초대 한국-프랑스 명예 친선 대사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는 동서양이 혼합된 김희선의 얼굴은 거의 예술이라며 김희선의 외모를 극찬했습니다. 또한 김희선은 거리를 완전히 장악한 스타였습니다. 협찬도 아닌 상품들이 오로지 김희선의 스타성만으로 40억 100억의 매출 신화를 달성하는가 하면, 수년간 끝나지 않는 신드롬을 구가하여 이미 방송가에서는 신드롬을 넘어 김희선 신화라는 용어까지 사용되고 있었죠.
당시 김희선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며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무조건 대박 취급을 받았습니다. <미스터 큐>나 <토마토> 같은 대박 작품들을 거의 김희선의 힘으로 시청률을 끌어낸 것이며, 그렇게 <미스터 큐>로 1998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까지 수상했고, 만 21세의 수상에 방송 3사 통합 문근영과 함께 최연소 대상 수상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990~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 배우로 성형외과 의사가 뽑은 가장 완벽한 미인이며, 김희선은 대한민국의 레전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뮤즈로서 앙드레 김이 1990년대 초반 신인이던 김희선을 보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최고의 미녀라며 극찬한 것은 김희선의 대표적 수식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항상 일반인은 물론 연예인이나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뽑는 실물이 가장 예쁜 연예인 1위에 꼽히곤 합니다. 한때 한예슬, 문채원 등의 후배 배우들이 포스트 김희선이라며 주목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포스트 김희선이라고 불릴 여배우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각선미 또한 김희선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죠. 드라마 예능 잡지 등에 나왔던 의상과 헤어스타일, 곱창 밴드 머리띠, 엑스자 실핀 등 액세서리를 유래 없이 전국적으로 유행시켰습니다. 김희선은 패션 스타일뿐만 아니라 키우는 토마토 화분, 요요 등을 전국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굉장히 당돌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목욕탕집 남자들> 당시 대본 리딩 현장에서 대선배들이 앉는 자리에 턱 하니 앉는 바람에 배우 강부자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숙이기는커녕 자리에 이름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니 의자 내 의자가 어딨냐며 역으로 따졌던 일화가 유명합니다. 연하의 아이돌 스타와의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스캔들은 에릭과의 열애로 둘은 실제로 오래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에릭이 뜬금없이 잡지를 통해 "할 수 있다면 생방송으로 공개 청혼을 하고 싶다."라고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양쪽 관계자 모두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고, 김희선의 어머니가 직접 "에릭 술 먹었냐?"라며 저격을 하는 등 흑역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조용조용 잘 사귀다 난데없는 공개청혼 논란 때문에 둘 다 흑역사로 끝난 연애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최초와 최고의 기록을 가진 김희선은 2천 년대에 기념비적인 자취를 남기는데 한류라는 유행어가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하게 된 계기로서 kci 등재 논문에 기록된 사실이 그것입니다.
김희선은 2002년 6월 중화권에서 상당한 권위를 자랑하는 '아주주간'의 표지 모델이 된 적이 있습니다. 김희선을 표지 모델로 한 해당 주간지는 무려 8페이지에 걸쳐 김희선의 단독 인터뷰와 함께 한류 현상을 소개했는데, 학회에 따르면 이것이 한류라는 유행어가 가장 광범위하게 유행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한류'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 자체적으로 만든 단어이며, 한류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한 사실과 한류라는 현상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고 하네요.
인형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신다고 합니다. 1990년대부터 알아주는 연예계 여자 주당이고 지인들 사이에선 별명이 '토마토'였다고 합니다.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했지만 '토하고 마시고 토한다'의 줄임 말로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고 하네요. 당시 90년대에는 여배우들이 술을 즐긴다는 이야기가 돌면 광고 캐스팅에 지장을 줄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김희선은 당당하게 술자리를 좋아하고 주당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술을 즐겼다고 합니다.
댓글